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에서 ‘택시’ 모델들은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을 뿐 아니라 각 메이커들의 기술적 진보 우위를 가져다준 귀한 존재들이었다. 그만큼 국내 곳곳을 누비며 해당 양산차 모델들의 장·단점을 파악하는데 숨은 공로자였고, 나아가 국산 승용차 전체 마켓을 성장시키는데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특히 1955년 등장한, 지프의 윌리스 MB 모델을 카피한 ‘시발’ 택시에 이어 1962년 새나라자동차가 닛산과 손잡고 출시한 ‘블루버드’ 그리고 ‘코로나(1966·신진자동차-토요타)’, ‘코티나(1968·현대차-포드)’, ‘브리사(1975·기아차-마쯔다)’, ‘포니(1976)’ 등은 국내 택시 역사를 거슬러 올라설 때 살펴봐야 할, 택시의 ‘뿌리 조상’격 모델들이다. 이번 할애된 기획 면에서는 이러한 맥을 담아낸 차량들의 경쟁력과 숨겨진 앵글과 성장통, 그리고 스토리들을 살펴본다.
편리한 ‘택시’는 누가·왜 만들었나 “대중적 경쟁우위 안겨다 준 매개체”
가장 편안하고 가장 개인적인 교통수단인 ‘택시’가 국내 시장에 대중적으로 안착된 시기는 1950년대 지프의 ‘윌리스 MB’를 본 따 빚어진 ‘시발’자동차가 선보여진 1955년이었다. 당시 ‘시발’은 폭발적인 인기몰이를 이어가며 누적 판매량 3000여대를 넘기도 했는데 대부분의 볼륨 수요는 자가용이 아닌 ‘시발택시’들이 차지했었다. 물론 1912년, 포드의 ‘모델 T’가 들어와 운행되기도 했지만 이는 현재 택시 개념과는 상이한 운영 형태였고, 이용자들도 극소수에 불과해 흐름을 같이 했다고 보기 어렵다.
1962년에는 새나라공업주식회사가 닛산과 기술제휴를 맺고 파란새가 국내에 날아 들어왔었다. 차명도 ‘블루버드’. 새나라에서 수입해 ‘새나라’ 택시로도 모습을 보였으며 차명에서 느껴지듯, 각지고 둔탁했던 시발과는 분명 차별화를 이루고 있었다. 특히 미려한 외관을 갖춰 ‘우람한 고급 수입 택시’라는 시선을 얻으며 인기를 누렸다. ‘새나라’ 블루버드에 이어 후발 주자인 신진자동차는 시발을 대체하며 ‘세단’ 카테고리가 국내에서 주목받기 시작하자 발 빠르게 토요타와 손잡고 ‘코로나’ 택시를 1966년 내보였고, 토종 진영에선 현대차가 이에 뒤질세라 포드와 연계해 ‘코티나’를 들여왔고 1968년 코티나는 택시로도 출시했다.
1970·80년대 택시 시장 ‘지각변동’…‘기아’ 선두에 ‘현대’ 격돌
이처럼 1960년대를 주름 잡았던 택시들이 대부분 국산화를 이루지 못한 모델들이었다면 1975년 혜성처럼 등장한 ‘브리사’는 이 같은 이미지를 단번에 끊어낸 첫 국산 소형 세단이었다. 기아차가 마쯔다와 전략적으로 부품 개발 기술력을 이전받아 조립한 날쌘돌이였고 이 브리사에 놀란 현대차는 이듬해 1976년 조랑말 ‘포니’를 택시로 내놓게 된다. 특히 ‘브리사’와 ‘포니’는 이 시절, 국산 승용차 시장 전성기를 이은 대표작들이다.
일례로 1980년 5월, 5·18 민주화 운동을 역사적 배경으로 담아낸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만섭’(송강호)이 몰았던 택시는 기아차가 빚어낸 1975년형 브리사(Brisa) 택시 모델이었으며 당시 완성차 시장에서 ‘포니 택시’와 상품성, 가성비 면에서 격돌하며 맞수 경쟁을 벌인 라이벌이었다.
“누가 포니를, 넘버투래”
1976년 1월부터 현대차는 포니의 본격 생산에 돌입했다. 당시엔 완전한 성공 여부를 알 수 없는 가슴 졸인 양산이었지만, 성능과 디자인에서부터 국산화율에 이르기까지 생산에 앞선 준비과정이 그 어느 때보다 철저했기에 자가용은 물론 택시 모델들의 개발 과정은 당치고 미래지향적이었다.
특히 생산개시 당시 포니의 국산화율은 90% 내외였고 그 결과 정부의 국산 소형승용차 개발계획에 참여했던 자동차 4개 메이커 중 정부가 제시한 국산 소형차 생산지침을 충족한 메이커는 현대차 포니가 유일한 경우였다.
다만 정부가 제시한 조건 중 차량의 가격만큼은 그대로 지키지를 못했다. 포니 판매가는 당초 상공부에 의해 228만9200원으로 책정됐다. 그러나 경제기획원은 포니의 가격이 높다는 여론에 따라 출고를 불과 10여일 앞두고 택시를 포함해 영업용 경우엔 대당 24만1900원을 인하한 204만7300원을, 자가용은 1만5930원을 내린 227만3270원으로 판매가를 구분 조정했다.
이에 현대차는 앞서 시장을 움켜쥐고 있던 기아산업의 브리사 영업용시장 내 자리를 잡기 위해 당시 당국의 판매가 인하조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인하된 금액(4500달러 수준)도 당시 미국 내에서 판매되는 일본과 서독산 소형차 가격이 최고 2300달러를 넘지 않은 것에 비해 여전히 높은 수준이었다. 따라서 수출산업으로 해외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당시 포니의 생산가격은 하향 조정돼야만 했고 단가를 내리기 위해선 기술 혁신이 필요했다. 특히 볼륨 수요이던 영업용 마켓을 잡아내기 위해서는 차량 판매 가격 인하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었다.
이러한 기조 아래 현대차는 포니 생산 첫해 매월 1500대씩 연간 1만 8000대를 생산한다는 계획하에 공장을 가동했으며 1976년 경우엔 생산 첫해이어서 중동과 남미의 자동차 비생산국 몇 곳을 골라 중점 수출한다는 계획도 수립했다. 특히 택시로도 분한 포니 엔진은 4기통 1238cc 80마력의 미쯔비시 새턴엔진을 썼는데 이 심장은 1973년 석유파동 후 연료난에 대처하기 위해 새로 설계돼 내구성과 연료 효율성을 갖추고 있었다.
포니는 또 배기량에 비해 엔진출력이 높아 여유있는 구동력을 갖추었고 동시에 택시 모델들이 지녀야할 장거리 고속주행에 무리가 없었고 등판능력도 여유가 있었으며, 기동성도 뛰어나 신호등이 많은 번잡한 시내주행에서도 점차 브리사 시장을 잠식해 갔다.
연료소모량은 시내 주행 시 리터당 13㎞를 달렸고 고속도로 경우엔 리터당 17.6㎞를 찍는 등 우월한 상품성을 갖추고 있었다. 배기량에 비해 연료소모량이 적었던 것이다. 특히 고속도로 주행 시엔 여유 있는 동력을 발휘했고 디자인 면에서도 루프에서부터 내려오는 유선형 스타일을 지녀 판매가 늘었다. 또한 택시업계에서는 주행저항을 감소시키는 차체로 인해 연비가 준수하다는 소문이 이어져 영업용으로든, 택시용으로든 인기가도를 누렸다.
이 밖에 포니의 또 다른 중요한 강점은 90%에 이르는 국산화율이었다. 포니는 국내 기술 수준이 따라가지 못하거나 시장성이 없어 생산 자체가 불가능한 카뮤레터 등 일부품목을 수입에 의존했을 뿐, 대부분의 부품들이 우리 기술로 빚어진 차량이었다. 어찌 보면 앞서 ‘브리사’가 안겨다 준 놀람이 포니를 국산화하는데 조력자와 같은 역할을 한 셈이기도 한 것이다.
1980·90년대 중후반 ‘중형’ 택시 시대 막 올라
현대차의 ‘스텔라’ 경우엔 1983년 택시로 분했다. 이 스텔라를 기점으로 2열에 3인이 타도 편안한 이른바 ‘중형 택시’ 시대가 국내에 열리게 된다. 이에 기아차 역시 독일계에서 풍을 더한 ‘콩코드’를 마쯔다 베이스 아래 빚어냈고 택시용을 1988년 출시했다. 하지만 스텔라보다 적은 실내 공간과 국내 수요층들이 원했던 앵글에서 벗어난 디자인에 연비 면에서도 가성비 격차를 누를 만큼 경제성이지 못해 상대적으로 판매량이 기대치를 하회했다. 연이어 내놓은 ‘캐피탈’은 1989년 택시로도 출시됐지만 대중들의 눈은 주행 정숙성과 널찍함이 주무기였던, ‘스텔라’와 쏘나타 편이었다. 또 한 체급 위로 포텐샤를 1994년에 선보였으나 ‘일본 택시’라는 시각 아래 중형과 대형 세그먼트 중간에 끼여 경쟁 모델들로부터 밀리고 판매량은 부진했다.
한편 1990년대에는 대우자동차가 로얄 라인업 택시들을 잇따라 선보여 현대차와 기아차가 꾸려온 대형 라인업 시장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국내 택시 산업 미래는 어디로 가나
무엇보다 친환경 연료를 주로 사용하는 방향성을 잡을 것으로 업계 내부에선 바라보고 있다. 특히 전기차와 수소전기차 마켓이 무르익으면서 이 분야에서 미래 먹거리와 경쟁력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실제 분주한 행보도 이어져 현대차는 이미 지난 2016년부터 울산에서 수소전기차 택시 시범사업을 벌이고 있으며 이는 미세먼지 등 배출가스 오염 저감 효과에도 일조해 이목을 끌고 있다.
특히 수소전기차는 고성능 공기정화 필터를 사용하기에 차량 1대가 중형 디젤차 2대가 배출하는 미세먼지를 정화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지녀 수소택시를 통해 도심 대기질 개선에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택시 업계 관계자 “택시 모델들을 살펴보면 우리나라 역사와 그 맥을 같이 해온 것 같다”라며 “최근엔 울산지역에 수소로 다니는 택시가 등장했는데 메이커들의 택시 모델 개발 흐름을 살펴보면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 흐름 속에선 시장을 누가 먼저, 읽어내는냐에 따라 순위가 달라져 왔다”라고 말했다.